가서 다시는 죄를 범죄하지 마라 날마다 솟는 샘물 성경 큐티 주석 2020년 3월 17일

2020. 3. 17. 11:06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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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솟는 샘물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요한복음 8장 1절~11절

 

 

주석:

가장 믿을 만한 사본이라고 생각되는 것에 기초해서, 복음주의자들을 포함한 상당수의 학자들은 간음한 여자 이야기가 원래 본문의 일부가 아니라고 믿는다. 이야기를 포함시킨 것에 찬성하는 근거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첫째, 약 1,350개의 요한복음 사본들이 그 이야기를 포함한다. 둘째, 이야기는 전후 문맥과 조화를 잘 이룬다. 성전에서 한 여자가 예수님께 끌려 왔다. 이 사건이 일어날 만한 적절한 곳은 여자들의 뜰밖에 없는데, 그곳은 8:20에 묘사된 곳이다. 초막절은 이제 끝났으므로(7:37, 53), 사람들은 장막에서 살다가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갔다. 이것은 7:53이 이 사건이 정당성을 지닌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갈릴리에서는 선지자가 나지 못한다(52절)는 공회의 주장에 대한 특유의 역설로, 요한은 예수님이 감람산으로 가시니라(8:1)고 말했다. 모든 선지자 중 가장 위대한 선지자이신 예수님이 요한계시록을 제외하고 신약에서 가장 위대한 예언을 하실 곳은 바로 감람산이었다(마24-25장;막13장;눅 21장). 아침에 라는 말은 상징적으로(참고. 21:4) 예수님의 모습으로 도덕적 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을 묘사한다. 8:12에 의하면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신 분이다. 이것은 요한복음의 빛/어둠이라는 주제를 계속 이어간다."다 각각 집으로 돌아"(7:53) 간 것과는 대조적으로, 예수님은 성전으로,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셨다.(참고. 2:16, 거기에서 예수님은 성전을 자기 아버지의 집이라고 부르셨다).

 

이 사건을 포함시키는 것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요소가 몇 가지 있다. 첫째, 그것은 종종 주장되는 것처럼 전후 문맥과 잘 맞지 않는다. 7:52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자신이 선지자라는 예수님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리고 8:12에 나오는 예수님의 진술은 그들의 논증에 대한 대답 역할을 한다. 이 경우 그 사건은 본문에 불필요하게 끼어든 것이다. 둘째, 예수님이 '아침에' 성전에 오신 것(8:2)과 그분이 "세상의 빛"(8:12)으로 떠오른 것 간의 상징적 연관은 분명하게 본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셋째, 문체와 유형이 전형적인 요한의 글형식이 아니다. 넷째, 이 당시에 유대 백성은 자신들의 권위로 사람을 처형할 자율권이 없었다. 로마가 최종 심판자였으며, 아마 이것을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인 것은 사법적인 처리가 아니라 폭도들의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스데반을 살해한 것과 관련된 '폭도의 행동'느낌은 없다. 이로 보아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정확한 것 같지는 않다. 다섯째, 8:12에 나오는 세상의 빛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초막절 마지막 날에 하신 말씀이었을 가능성이 더 많다(7:37). 그날에는 언제나 성전산에서 거대한 횃불 의식이 있었다. 메시아가 세상에 빛을 가져오실 분이라는 것에 대한 상징이었다. 마지막으로 외적인 사본 증거는 그 이야기를 뺄 것을 강력하게 지지한다. 사실상 모든 알렉산드리아 사본들, 즉 대부분의 학자들이 가장 오래되고 가장 덜 훼손되었다고 간주하는 사본들은 그것을 빼놓으며, 사실상(대다수의 학자들이 훨씬 이후의 것이며 일반적으로 더 훼손되었다고 간주하는) 모든 비잔틴 사본들은 그것을 포함시킨다. 하지만 사본들이 그 이야기를 포함시킬 때마저도, 그 이야기의 위치는 각 사본들에서 '이리 갔다가 저리 갔다가' 한다. 이것은 심지어 그 이야기를 포함하는 사본들 가운데서도, 그것에 대해 큰 의심이 있음을 나타낸다.

이야기가 원래 본문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증거들이 많지만, 그 증거가 빈틈없이 완벽한 것은 아니며,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때문에, 여기에 그에 대한 주석을 제공한다.

 

8:3-5

사람들은 율법교사로서의 예수님께 의의를 제기하고 있었으므로, 율법 해석자인 서기관들이 바리새인들과 함께 왔다. 그들은 함께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예수님께 끌고 왔다(4절). 상대방 남자는 끌고 오지 않은 사실에 비추어볼 때, 유대인 지도자들은 그들의 악의적 의도와 율법이 요구하는 공정함을 무시하는 것을 드러냈다(참고. 7:50-51). 모세 율법에 따르면(5절), 단지 이러한 여자뿐 아니라, 모든 간음하는 자들은(남자나 여자)은 돌로 쳐서 죽여야 했다(레 20:10;신 22:22).

 

8: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었다. 만약 예수님이 그 여자를 간음한 여자로 규정하여 돌로 치라고 하셨다면, 그분은 사건을 재판하고 처형을 시행하는 로마 정부의 독점적 권위를 무시하는 자가 될 것이다(참고. 18:31). 반대로 그 여자를 그냥 보내주기로 하신다면, 그분은 모세 율법을 불순종하는 자가 될 것이다. 예수님은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뭔가를 쓰신 후에 일어나(7절) 율법이 명한대로(신 17:7)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율법은 또한 악의적 의도로 위증의 죄를 지은 증인을 대신 돌로 쳐서 죽일 것을 요구했다(신 19:16-19).

 

8:8-9

예수님이 무엇을 쓰신지는 밝혀져 있지 않다. 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쓰셨다는 것과(6절) 두 번 쓰셨다는(8절) 것이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내려오신 후(출 19:11,20) 십계명을 그분의 손가락으로 두 번 쓰셨다(출 31:18; 32:1,4; 신 9:10). 예수님은 손가락으로 두 번 쓰심으로, 자신이 여기에서 하나님 아버지가 율법 수여자로서 이스라엘을 위해 성취하신 것과 똑같은 역할을 성취하고 계셨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셨다(1:1; 5:18; 8:58; 20:28). 그러자 그들이 어른, 즉 양심이 자신을 더 오래 짓누른 사람들로 시작하여 하나둘 떠났다(9절).

 

 

8:10-11

율법에 따르면, 사람은 증인이 2명 이상 있어야만 사형에 처할 수 있었다(8:17; 신 17:6; 19:15). 하지만 이제 그 여자를 돌로 쳐서 죽이도록 정죄할 증인이 아무도 없었다. 예수님은 여자를 풀어주어 모세 율법에 온전히 순종하셨다. 증인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11절).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이 경우에서처럼 죄 사함은 언제나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는 명령보다 먼저 나오며, 그 명령의 가장 큰 동기를 형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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