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솟는 샘물 주여 내가 믿나이다 큐티 주석 성경 2020년 4월 2일

2020. 4. 2. 14:13큐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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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솟는 샘물

주여 내가 믿나이다

요한복음 11잘 17절~31절

 

 

무디 성경 주석:

11:17-19

예수님이 마을 밖에 도착했을 때, 예수님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것(11-14절)에 대해 들었다. 즉,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는 것이다. 요한은 이스라엘의 기후에서는 부패가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나흘이라는 말을 써놓았을 수도 있다. 심지어 가장 속 좁고 반항적으로 흠을 잡는 사람이라도 부활이며 생명이신 예수님, 죽은 사람을 심지어 그의 시체가 무덤에서 썩기 시작한 후에도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일으킬 수 있었던 분에게 도전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왜 예수님이 베뢰아에서 이틀을 더 기다리셨는지(6절) 설명해 줄것이다. 팔레스타인 밖에 있는 그의 독자들에게 요한은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오 리쯤만 떨어져 있다고 언급했다(18절). 그렇기 때문에 많은 유대인(19절)이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들로 갈 수 있었으며, 그들은 오라비를 잃은 마르다와 마리아를 위로하러 올 수 있었다. 이들은 아마 그 가족의 친구와 친척들로 나사로를 장사 지내는 일을 도운 사람들이었을 것이다(34절).

 

 

11:20-22

마르다와 마리아에 대한 누가의 묘사(눅10:38-42)는 요한이 제시하는 묘사와 일치한다. 마르다는 행동하는 여인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베다니 근처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그녀는 나가 맞이했다. 마리아는 참을성이 더 많았다. 그녀는 집에 앉아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기다렸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베다니에 계셨더라면 그분의 친구인 나사로를 고쳐주셨을 것이라 믿었다(21절). 22절에서 그녀는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 아버지께 구한다면 자신의 오라비를 부활시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표현했다(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참고. 41-42절).

 

 

11:23-24

마르다의 명확한 확신(22절)은 간접적인 요청이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 응답하셨다.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이 약속에 대해 마르다는 그녀의 믿음에 대한 놀라운 진술로 반응했다. 마지막날 부활 떄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마르다는 구약의 가르침에 따라(욥19:25-27; 시17:15; 사26:19; 단12:2), 자기 오라비가 다시 부활할 것을 확실히 알았다. 우리도 다른 신자들의 부활에 대해 이런 확신을 가질 수 있다.

 

 

11:25-27

예수님은 그저 부활시킬 능력을 가지고 계신 것만이 아니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는 그분의 주장은 그분을 부활과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 만든다. 무릇 살아서(26절)라는 말은 육체적 생명을 말한다. 그다음에 나를 믿는 자는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오직 이생에서만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을 기회를 가진다(히9:27). 이것을 믿느냐라는 말은 '나를 믿는'(25,26절)이라는 말과 유사하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약의 진리들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믿는(혹인 신뢰하는)' 것과 구분해서는 안 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마르다의 고백(27절)은 요한의 기록 목적(20:31)이 나올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것은 예수님이 나의 부활이요 영생이라는 것을 믿는 것을 의미한다. 

 

 

11:28-29

예수님은 대화를 마무리하면서 마르다에게 가서 그 자매 마리아를 그분께 오라고 말하라고 청했다. 마르다는 자기 자매에게 가만히 말했으므로, 그년느 아마 예수님이 마리아와 사적인 대화를 하기 원하신다고 이해했을 것이다. 선생님이라는 것은 유대인 랍비이신 예수님에 대해 사용된 호칭이었다(참고. 1:38; 3:2; 20:16). 하지만 그 호칭은 복음서 외에서는 예수님에 대해 사용되지 않는다. 모세오경 이후에 선생의 역할은 성령이 맏으신다(14:26; 15:26). 마리아가 급히 일어나(29절) 예수님께 간 것은 그녀의 존경과 믿음을 보여준다.

 

11:30-31

아마 무리를 피하시 위해 예수님은 베다니 밖에 그냥 계셨던 것 같다. 마리아가 예수님이 어디 계신지를 알도록 하기 위해, 예수님은 마르다가 맞이 했던 곳에 머물러 계셨다. 마리아와 마르다를 위로하기 위해 온 위로자들(31절)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나러 갈 때 따라갔다. 이 유대인 친구들은 마리아가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했다. 유대인 애도자들은 보통 죽은 자들의 무덤에서 애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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